위(胃)의 반란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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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0-14 13:58 조회9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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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에 와 닿는 봄바람과 만발한 꽃들을 보면 봄인데 금방 가을로 바뀐다.
봄날의 따스함이 순식간에 가을의 스산함으로 바뀌는 것을 보니 봄 날씨가 꽤 짓궂다.
이러거니 저러거니 대지는 자신의 몸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든 식물들에게 봄을 재촉한다.
대지의 채근에 못 견딘 앙상한 가지의 마디마디는 새순을 내보내고, 그 새순들은 나무들에게 한 해를 치장할 옷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또 때가 되면 다시 나무 밑으로 귀의(歸依)하게 될 것이다.
산이나 나무는 자신이 수용할 만큼만 머금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또 아귀손을 하고 움켜쥔다. 문명의 이기(利器)이지만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냉장고와 냉동고를 사용한다. 거기에 자신의 위(胃)에 담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관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필요할 때 위(胃)에 채우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다시 한 번 붙들고 읽는 책이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이다. 그는 1817년에 태어나 불과 45세의 나이에 별세했지만 그 당시에 이런 사색과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에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 감탄과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월든’은 책 겉표지의 문구처럼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고전인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곤충학자인 커비와 스펜스의 저서에서 “완전한 상태에 있는 어떤 곤충들은 소화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器官)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규정짓기를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 놓인 거의 모든 곤충들은 유충 상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또 “식욕이 왕성한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고, 식욕이 왕성한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서는” 한두 방울의 꿀이나 그 밖의 단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 밑에 붙어 있는 배 부분은 과거에 유충이었던 때를 나타낸다. 이 맛있는 부분 때문에 그는 언젠가는 누구에게 잡아먹힐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대식가는 유충 상태에 있는 인간이다.

데이빗 소로우는 인간의 대식(大食)과 탐식(貪食)을 지적하며 유충 상태의 인간이라고 빗댄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먹는다. 음식과 함께 욕망도 먹는다. 때로는 음식을 먹고 후회하듯이 자기 스스로 버린 욕망을 후회하여 금방 가서 또 줍는다.

40일 금식기도를 할 때는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이겨냈는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고백한다.
목젖이 달라붙어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오그라진 위(胃)에 한 모금의 물이 들어올 때면 살 것 같았다.
나중에는 물조차 소화시키기 힘들었어도 물 한 모금은 생명수였다.
그런데 금식이 끝나고 보호식을 하면서 조금씩 회복된 위(胃)는 자꾸 자기를 채우라고 한다.
조금만 채워져도 힘들어하면서 또 채우라고 한다. 욕심이다.
사람이 먹는 것을 하찮게 여길 수는 없지만 음식을 먹고 육(肉)이 힘을 얻어 그 힘으로 살면 반대로 영(靈)이 힘들어진다. 단순 다이어트나 몸매를 위함이 아닌 영(靈)을 살리기 위해서 위(胃)의 반란을 제압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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