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耳)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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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15 14:23 조회7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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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귀는 외이(外耳), 중이(中耳), 내이(內耳)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귀 하나로 듣는 것 같지만 귀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남의 말을 들을 때에도 세 개의 귀로 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둘째, ‘무슨 말을 하지 않는’ 지를 신중히 가려내 들어야 한다.
셋째, ‘말하고자 하나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귀로 가려내야 한다.
진언(眞言)과 교묘하게 꾸며대는 교언(巧言)을 구별해 내는 것도 역시 귀로 분별해야 한다.
귀에 들리는 것에 쉽게 반응하고 말하는 귀가 얇은 세태는 참된 멘토, 참된 제자를 얻기 힘들게 만든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관계를 비롯한 세상을 사는 원리와 방식을 판단하고 결정짓는데 있어서 사람의 오감(五感)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눈의 시각, 귀의 청각, 코의 후각, 혀의 미각, 피부의 촉각의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와 축적, 그리고 활용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오감은 매우 중요한 기관(器官)이다. 그 오감 중 귀를 눈여겨보자.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진퇴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내면세계의 질서가 정돈 된 사람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말소리에는 그 사람의 인격의 격(格)과 감정의 색감이 담겨져 있다. 말 잘함이 곧 인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하고, 말 한 마디로 인해 낭패를 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사람의 말은 참으로 중요하다.
‘달청’(達聽)에 대해 들어보았나?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붙여 보았다.
왜냐하면 내 말을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의 자세가 달변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잘 들을 때 내 말에 실수가 생기지 않게 된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까닭은 두 번 듣고 한 번 말하라는 창조의 신비가 담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의 말이 전부의 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말의 난무하면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대화가 된다.
말을 아끼는 사람의 귀는 들음에 대하여는 열려있고, 입은 무겁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에 담긴 의미에서 진실이든 거짓이든 가벼이 듣지 않고 옥석을 가려낸다.
모든 관계의 새로운 출발과 좋은 시작은 경청에 있다.
들어주어라. 그러면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경청은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이고, 내 입으로 그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큰 지혜자이다.
귀 하나로 듣는 것 같지만 귀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남의 말을 들을 때에도 세 개의 귀로 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둘째, ‘무슨 말을 하지 않는’ 지를 신중히 가려내 들어야 한다.
셋째, ‘말하고자 하나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귀로 가려내야 한다.
진언(眞言)과 교묘하게 꾸며대는 교언(巧言)을 구별해 내는 것도 역시 귀로 분별해야 한다.
귀에 들리는 것에 쉽게 반응하고 말하는 귀가 얇은 세태는 참된 멘토, 참된 제자를 얻기 힘들게 만든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관계를 비롯한 세상을 사는 원리와 방식을 판단하고 결정짓는데 있어서 사람의 오감(五感)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눈의 시각, 귀의 청각, 코의 후각, 혀의 미각, 피부의 촉각의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와 축적, 그리고 활용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오감은 매우 중요한 기관(器官)이다. 그 오감 중 귀를 눈여겨보자.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진퇴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내면세계의 질서가 정돈 된 사람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말소리에는 그 사람의 인격의 격(格)과 감정의 색감이 담겨져 있다. 말 잘함이 곧 인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하고, 말 한 마디로 인해 낭패를 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사람의 말은 참으로 중요하다.
‘달청’(達聽)에 대해 들어보았나?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붙여 보았다.
왜냐하면 내 말을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의 자세가 달변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잘 들을 때 내 말에 실수가 생기지 않게 된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까닭은 두 번 듣고 한 번 말하라는 창조의 신비가 담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의 말이 전부의 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말의 난무하면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대화가 된다.
말을 아끼는 사람의 귀는 들음에 대하여는 열려있고, 입은 무겁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에 담긴 의미에서 진실이든 거짓이든 가벼이 듣지 않고 옥석을 가려낸다.
모든 관계의 새로운 출발과 좋은 시작은 경청에 있다.
들어주어라. 그러면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경청은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이고, 내 입으로 그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큰 지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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