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사람(200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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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4-13 15:30 조회1,5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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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봄 텃밭 울타리 쪽에 피었던 프리지어(Freesia)가 가을날에 다시 그 봄의 모습을 기억나게 하는 몸짓을 한다.
가냘퍼 보였지만 힘이 있었고, 크고 작은 풀잎들마다 생명의 꽃대를 올리더니 꽃대에 맺힌 예쁜 꽃망울이 터지면서 여러 색깔의 꽃잎들이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랑하고, 그 꽃 향(香)은 또 얼마나 진하던지…
꽃잎은 시들고 꽃잎 끝에 열린 열매주머니 속의 씨앗들이 까맣게 영글도록 햇빛과 바람이 힘껏 도와주었고 씨앗들은 마침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프리지어는 땅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나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가을에 다시 프리지어의 풀잎들이 쫑긋쫑긋 머리를 내밀고 인사를 하는데 지난 봄 자신의 몸짓과 화무(花舞)를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기다림 속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과 눈길을 주고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존재의 의미와 이유는 충분하다.
마당의 꽃들도 기억되거늘 왜 사람이 기억되지 않겠는가.
새벽녘 하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뛰어내려와 파란 잔디와 풀잎, 그리고 많은 수목과 대지에 주옥(珠玉)처럼 맺혀있던 아침이슬들은 아침햇살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잠시 공기와 섞여져 돌아가는 것 일 뿐이다. 이슬을 머금었던 그 공기가 다시 찬 공기와 만나는 날 다시 이슬이 되어 대지 위로 내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다만 잠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마음속에 기다림이 있는 한 우리는 아무도 사라지지 않는다.
꽃들도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렇게 떠날 뿐이다.
그 삶결(삶의 물결)과 족적(足跡)이 좋음으로,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언제고 다시 돌아온다. 이슬처럼, 꽃처럼…
내 몸이 누군가의 수족이 되고, 눈이 되고, 입이 되고, 귀가 되는 것은 육신의 본성을 넘어서는 육체의 반란이다. 그것은 멋진 반란이다. 모두가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수족이 되고, 하나님의 눈이 되고, 하나님의 입이 되고,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삶을 살아드리는 몸짓과 믿음의 향취(香臭)로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 사람의 울타리와 방패,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기에 생(生)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누군가를 살리고, 일으키고, 바르게 인도하는 삶짓(삶의 몸짓)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고상한 위치로 올려놓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토해 놓은 인생의 힘든 ‘날숨’을 나의 ‘들숨’으로 마실 수만 있다면 더 많이 따뜻해지고 더 많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의 세상’이 ‘우리의 세상’이 되고 덜 힘들고 덜 외롭고 오히려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기다림이 있다.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그런 사람들!
가냘퍼 보였지만 힘이 있었고, 크고 작은 풀잎들마다 생명의 꽃대를 올리더니 꽃대에 맺힌 예쁜 꽃망울이 터지면서 여러 색깔의 꽃잎들이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자랑하고, 그 꽃 향(香)은 또 얼마나 진하던지…
꽃잎은 시들고 꽃잎 끝에 열린 열매주머니 속의 씨앗들이 까맣게 영글도록 햇빛과 바람이 힘껏 도와주었고 씨앗들은 마침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프리지어는 땅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나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가을에 다시 프리지어의 풀잎들이 쫑긋쫑긋 머리를 내밀고 인사를 하는데 지난 봄 자신의 몸짓과 화무(花舞)를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기다림 속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과 눈길을 주고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존재의 의미와 이유는 충분하다.
마당의 꽃들도 기억되거늘 왜 사람이 기억되지 않겠는가.
새벽녘 하늘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뛰어내려와 파란 잔디와 풀잎, 그리고 많은 수목과 대지에 주옥(珠玉)처럼 맺혀있던 아침이슬들은 아침햇살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잠시 공기와 섞여져 돌아가는 것 일 뿐이다. 이슬을 머금었던 그 공기가 다시 찬 공기와 만나는 날 다시 이슬이 되어 대지 위로 내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는 것은 없고 다만 잠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마음속에 기다림이 있는 한 우리는 아무도 사라지지 않는다.
꽃들도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렇게 떠날 뿐이다.
그 삶결(삶의 물결)과 족적(足跡)이 좋음으로,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언제고 다시 돌아온다. 이슬처럼, 꽃처럼…
내 몸이 누군가의 수족이 되고, 눈이 되고, 입이 되고, 귀가 되는 것은 육신의 본성을 넘어서는 육체의 반란이다. 그것은 멋진 반란이다. 모두가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수족이 되고, 하나님의 눈이 되고, 하나님의 입이 되고,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삶을 살아드리는 몸짓과 믿음의 향취(香臭)로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 사람의 울타리와 방패,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기에 생(生)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누군가를 살리고, 일으키고, 바르게 인도하는 삶짓(삶의 몸짓)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고상한 위치로 올려놓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토해 놓은 인생의 힘든 ‘날숨’을 나의 ‘들숨’으로 마실 수만 있다면 더 많이 따뜻해지고 더 많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의 세상’이 ‘우리의 세상’이 되고 덜 힘들고 덜 외롭고 오히려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기다림이 있다.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그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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